어제, 그러니까 5월 2일 고려대학교에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박사직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죠.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참, 황당한 일이었을 겁니다.
언론이나, 여론도 학생들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어요.
그럼, 학생들은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요?
이런 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몇년 전(김대중 정부 시절)에 고려대의 모 교수가 '대통령학'이라는 강의를 개설하여 김영삼 전 대통령을 학교로 초빙하여 강연을 개최하고자 한 바 있죠.
그 당시, 학생들은 IMF의 원흉 김영삼을 데려다놓고 무슨 강의를 하느냐며 정문 앞에 드러누워 연좌 농성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문구도 있었어요. "개와 김영삼 출입금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문 앞에서 차 안에 갖힌 채 열일곱시간 - 깡통에 소변을 보며 말이죠, 본인이 직접 자랑삼아 얘기한 거예요 - 을 버티다가 차후 강연 일정을 잡은 후에야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찾아와 강연을 마치고 말았죠)
그 당시 여론은 어떠했습니까. "김영삼 꼴통" . 그 뿐이었죠. 학생들이 심한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얼마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이며, 언론이며 김 전 대통령의 똥꼬집에 비웃음을 보내는 분위기였어요. (고려대의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던 동아일보만 조금 쪽팔려했던가요)
다시, 어제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구요.
이건희 회장은 국내 일위, 세계 굴지의 대기업 '삼성'의 회장입니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하신 분이죠. 이러한 분이 유명 사립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 어제 이건희 회장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5월 5일은 고려대학교의 창립 백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아울러 교내의 백주년 기념관 - '삼성홀'이 개관하는 날이기도 하죠. '삼성홀', 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무려 400억을 기부하여 지어 낸.
사진으로 그 위용을 잠시 감상하시죠. 야간에는 무려 빨주노초파남보(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의 조명이 돌아가면서 터지는 멋진 센스!의 건물입니다. (기념관은 연면적 약 7100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약 3000평 규모의 박물관 △열람실 약 2500석 △학술정보관(Centennial Digital Library) △각종 첨단 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 고대신문 - 김수진 기자)
학교로서는 이 분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등록금을 아무리 올려 봐야 학생들이 400억을 만들어 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명예박사 학위로 400억을 만든다면 정말 효율적이기 그지없는 투자지요.
그럼, 이 굴지의 경영인 이건희 회장이 원한 학위는 어떤 것일까요-? 경영학? 이건 서울대에서 받았으니 아니고. 경제학? 이것도 아니네. '철학'이랍니다. '철학'.
“ 오늘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으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1966년 동양방송을 시작으로 한평생 경영인의 길, 그리고 체육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World best 철학으로 새로운 전략과 경영기법을 개발하여 오고 계십니다. 그 결과 삼성을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최단기에 세계에서 최고가는 기업그룹을 육성했다는 면에서 세계 기업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습니다.
...
이 회장은 앞을 미리 내다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역사의 고비마다 항상 새로운 철학과 경영기법을 내어놓아 기업 경영은 물론 세계 인류의 앞날을 개척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경영사학자들은 이 회장을 가리켜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치혁신을 통한 생산성의 향상은 세계 경제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경제학계와 경영학계에서는 이 회장의 이러한 차원 높은 경영철학과 관리를, 기업경영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연구하고 있는 것이 공지의 사실입니다.
이 회장은 또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정한 기업경영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인류 평화를 증진시키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사업과 스포츠를 통해서 문화를 창달하고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류가 학문을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가 꽃 핀 B.C. 7세기경부터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초기의 석학들은 철학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학문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오늘날 철학의 영어표현인 ‘Philosophy'는 헬라어인 ‘Philosophia'에서 연유했으며, 이말은 ‘사랑한다’는 뜻의 ‘Philos'와 '지혜'를 의미하는 'Sophia'의 합성어입니다.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입니다. 이 지혜는 숭고한 인류애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삼성의 이 회장은 바로 이러한 지혜를 사랑하고, 그 지혜를 통해 세계 경제와 인류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온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회장의 이러한 정신과 업적은 고려대학교가 소중하게 가꾸고 지켜 온 ‘자유 정의 진리’의 건학정신과 바로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 "
학생들은 의아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철학'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니셨기에 '철학박사' 학위를 얻게 되었는지. 지혜를 사랑하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 그룹은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인데, 그 '무노조' 철학을 고려대학교는 높이 평가한 것인가? 아니면, 노조를 만드려 시도한 직원들을 '위치추적'하여 '음모'를 원천 봉쇄한 전략을 높이 평가한 것인가? 아니면, 자녀들에게 부를 세습하는 데 있어서는 탈법도 서슴치 않는 과감한 전략을? '자유 정의 진리'는 그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인가?
그래서, 학생들은 학위수여식이 열리던 인촌기념관 - 학생들은 친일파 인촌의 이름을 거론하기 싫다며 4.18 기념관이라 부르기도 했던 - 으로 달려갔답니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연좌도 하고. 기자들 많으신데, 학교 관계자니 삼성 관계자니 모두들 사색이 되셨지요. 이 무지몽매한 학생들을 보라! 내가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하라고 400억이나 보태 주었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고려대학교는 오늘 보직교수들을
전원 사퇴시켰습니다.
그러면.
대학생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대기업에서 제공하는 멋들어진 열람실에서 서로 자리를 맡아가며 토익 공부를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취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올바른 대학생의 자세가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어제의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 취업 준비는 하지 않고 자신과 관계도 없는 일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비난합니다. 멍청한 고대생들. 너희들은 이제 삼성 가기는 틀렸다. 혹은, 유독 한국사회에서만 세계적으로 성공한 경영인이 인정받지 못한다. 등등.
그럼에도, 저는 어제의 학생들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김영삼이 정문 앞에서 소변을 참고 있을 때 낄낄거리던 제가 저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거죠. 얼마 전에 의대박사 학위를 돈주고 사고 팔던 의사들을 경멸하던 제가 누구를 비난하겠습니까.
씁쓸한 백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