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은 영원히!

mercury.egloos.com

포토로그


Tweets @ Hermes_oh



- Notice - 딸기밭은 영원히! And Call Me 'hermes'

이 블로그에 대한 조금은 친절한 소개글.

블로그의 제목, '딸기밭은 영원히!'는 비틀즈의 67년도 작품인
'Strawberry Fields Forever'에서 따 왔습니다.

계속 읽기

최근 읽은 책, 두서 없이. A Study in Purple

1.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류 포터, 김이선 역, 21세기북스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마음이 아려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는 과거로부터 온 기억과 미래에 대한 카산드라적인 예언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하나 둘 놓쳐버리고 말았다.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사람의 기억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재에, 그리고 다가 올 미래와 그 선택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만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지점에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하고 서 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일까.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서로 털어 놓지 못하고 만 사랑의 표현은, 결국 서로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 끝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의 뒷걸음질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나아간 순간을 훼방놓는 밉상스러운 운명의 장난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다가 올 끝에 슬퍼하면서도 조금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편이 더 좋았으리라, 는 언제나 늦은 후회(들).


2. 마션, 앤디 위어, 박아람 역. 알에치코리아


출간 이후 주변의 호평이 계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맷 데이먼의 얼굴이 크게 프린트된 번역본을 집어들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책을 펴 그 첫 문장을 읽고 났을 때 소리내어 웃고 말았던 그 순간이란.


"아무래도 난 좆됐다."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들을이야기의 기저에 자연스럽게 깔아 두고, 독자들을 전혀 부담스럽게 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유머러스하고, 흥미로우며, 모험심을 자극하면서, 그 자체로 번뜩인다.


* 마침 극장에서도 성공적인 흥행을 하고 있다. 추천 감상 순서는 영화 - 소설 - 영화.


3. 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허진 역, 은행나무


한참 회화가 안겨 주는 아름다움과 희열에 빠져 있을 때, 하나의 화두는 과연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회화 중 어느 쪽이 우위에 있냐라는 웃긴 질문이었고, 우울하고 병약한 자가 고심끝에 내린 선택은 매너리즘을 필두로 한 이탈리아 북부 화가들의 신승이었다.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미술관 테러의 혼란 속에서 우연히 카렐 파브리티우스(렘브란트의 제자이자 베르메르의 스승이라는)가 그린 '황금방울새'를 들고 나오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룬다. 소년이 겪는 고통과 희망, 영광과 좌절, 우정과 사랑은 그 자체로 극적이지만, 나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중독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모든 이야기들을 나는 좀처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이는 10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소설 자체를 너무나 힘겹게 느껴지게 했다.


4. 레디플레이어원, 어니스트 클라인, 전정순 역, 에이콘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맡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이 소설은, 최근 "픽셀"이라는 영화에서 내가 기대했고 그로 인해 실망했던 모든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담고 있다.


80년대 영화와 드라마, 비디오 게임, 음악, 에니메이션, 그 시절에 중독되어 살아간 경험이 있는 상상력 풍부한 독서광에게 '레디플레이어원'은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의 가상 왕국을 건설하고 그 안에서 영웅이 될 기회를 마련해 줄 게다.


5. 별도 없는 한밤에, 스티븐 킹, 장성주 역, 황금가지


그 스티븐 킹이다. 
그의 최신 중편 소설집이다.
그/그녀들은 결국 끝장을 내고 만다.
그가 밝혔듯, 사람들의 근본은 대개 착할 게다.
거기 지금 당신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로버트 알트만, 1973. A Study in Purple



필립 말로, 레이먼드 챈들러가 그려낸 이 유명한 탐정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편을 극화한 동명의 영화.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필립 말로는 주변인들이 표현하는대로, "케케묵은 갤러해드"이자 '비열한 거리'를 거니는 탐정,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트만이 그려낸 '기나긴 이별'의 세계, 중독자들로 가득찬 이 세계(약물 중독, 알콜 중독, 폭력과 권위에 대한 중독, 심각한 담배 중독... 심지어 말로가 기르는 고양이까지도 '커리표 캣푸드'에 중독되어 있다!)에서는 애초의 말로 역시 오간데 없고 특유의 이죽거리는 수다만이 공허하게 남는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용하고  살해하는 이 세계에서 과연 말로는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이 영화 속의 말로에겐 아무데서나 그어대는 성냥불에 붙이는 담배만이 시그니쳐로 남을 뿐, 한때나마 우정을 나누었을 테리 레녹스는 이미 그 곁에 친구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없다.  

말로라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모두에게 버림받는 시니컬한 남자로 대체되고, 그가 진심으로 대했던 남자 테리 레녹스가 능글맞은 모략가로 변모한 상황에서, 되려 인상적인 등장인물은 깡패두목인 마티 오거스틴이다.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말로에게 사라진 돈(리처드 메디슨, 5000달러짜리 지폐)의 행방을 추궁하던 중 취조를 방해하던 내연녀에게 가하는 폭력의 충격, 그리고 아지트를 찾아온 말로 앞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며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우스꽝스러운 집착(과 광기의) 모습. 

*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동명의 노래가 여러 장면과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변주되며 관객들에게 안녕을 고하지만, 솔직히 폼잡으며 안녕을 이야기하기엔 말로의 변모(와 충격적인 엔딩)가 어이없을 따름

** 한편으로 이해해보자면, 뜬금없는 엔딩 삽입곡 "Hooray for Hollywood"를 '헐리웃 엿먹으라지' 정도로 삐뚤게 보아야 할까. 

*** 집나간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있어서도 말로는 커다란 지탄의 대상이 될 게다.


@서울아트시네마, 2014. 1. 19.

1 2 3 4 5 6 7 8 9 10 다음